갈기먼빙

“정주음식업계지”의 기재에 따르면 갈기먼빙의 창시인 갈명혜선생은 청조 만족 양황기 사람으로 1882년에 그가 10세 나던해에 북경 가왕부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왕예를 모신적이 있었는데 왕예는 그를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는 근검하고 배우기를 즐겼고 한가할 때면 자주 왕부 선식방에 가서 주방일을 도우면서 조리법을 익혔습니다. 당시 왕부에는 일종 주식인 천층병 외에 단지육이라는 요리가 있었습니다.

어느하루 왕예가 왕부에 오니 배가 고팠는데 갈명혜는 곧바로 왕예를 위해 단지육을 만들고, 다시 갓, 고수로 국을 끓였는데 부드러운 입감에 고기 육즙이 감돌면서 입안을 가득 메워 왕예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민국 초년 전란에 휩쓸리던 시기에 갈명혜는 두 아들을 데리고 하남에 와서 생계를 이어 갔고, 고난 속에서 왕예가 찬사를 아끼지 않던 단지육 먼빙이 생각났습니다. 그리하여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정주기차역 부근에 “단지육먼빙관”을 개업하고 갈명혜가 직접 주방을 맡고 두 아들이 옆에서 도왔습니다.

해방후 갈명혜와 그의 둘째 아들이 선후하여 세상을 떠났고, 큰아들 갈거상이 계속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부친의 조리기술을 이어받았는데 단지육의 향이 사처에 날리면서 많은 고객을 끌었고 여러해 고심어린 경영 끝에 갈기먼빙은 원근에 소문난 풍미 먹거리로 되었습니다.

갈기단지육 먼빙은 떡과 특제 단지육에 야채를 곁들여 쪄냅니다. 떡은 부드럽게 구운 천층병으로 식힌후 잘라서 준비해 둡니다. 단지육은 껍질이 붙은 삼겹살을 2센티미터 덩이로 자른후 솥에서 끓으면 거품을 제거하고, 다음 고기덩이를 꺼내 단지에 넣은후 여러가지 양념, 삭힌 두부를 넣고 고기국물을 부은후 아구리를 봉하고 큰불에 끓이다가 다시 작은불로 천천히 잘 익을 때까지 푹 고아냅니다.

단지를 열 때 고기향이 사처에 날리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었는데 예로부터 “카이탄샹”이라 불렀습니다. 떡을 찔 때 솥에는 야채를 깔고 떡과 단지육을 얹은후 다시 진국을 부어 천천히 찝니다. 고기향이 짙고 느끼하지 않으며 부드러운 떡은 입에 사르르 녹아들어 남녀노소 모두 즐겨 먹었습니다. 떡을 찔 때 콩나물 외에 많게는 사계절 신선한 야채, 이를 테면 마늘종, 소배추, 사계절매화, 줄풀줄기 등을 많이 사용합니다. 떡을 찌는데 사용하는 국물은 돼지고기 국물 외에 닭탕, 오리뼈탕도 가능하며 따라서 쪄낸 후의 떡은 향긋하고 느끼하지 않으며 맛이 산뜻합니다.

발전편집

1995년, 정주 제4회 미식월에서 “중원명요리” 칭호를 수상하였습니다. 1997년 12월 항주 전국 제1회 명요리 인증에서 “중화명요리” 월계관을 따냈습니다. 갈기먼빙은 수십년간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쳐 선후하여 일마로, 교가문, 돈목로, 덕화로, 대동로에서 분점을 개설하였습니다.

1987년, 옛도시 개조로 인해 한때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9년 정주시음식회사에서 전통 옛풍미, 백년 옛식당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제3대 후예 갈영지가 남교가문에서 옛날 상호를 복원하여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핵심 절차인 생산절차는 갈씨 가족 구성원이 직접 조리함으로써 품질을 보장하여 정주에 출장을 온 “토배기북경”인들 마저도 수소문하여 찾아와 맛을 보군 합니다.

정주관광국 저작권 소유